백남기 농민 사망 쌀값 21만원 공약 한적 없다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백남기(69)농민이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백남기 씨를 치료해온 서울대병원은 25일 “백씨가 오후 1시 58분경 급성 신부전으로 숨을 거뒀다”라고 밝혔다. 이는 백남기 농민이 국가의 공권력에 스러진 지 316일 만이다.



백씨는 당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외상성 뇌출혈 진단을 받았고 이후 의식을 잃은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왔었다.


백남기씨는 지난해 민중총궐기대회 당일 대통령의 공약인 쌀값 21만원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다 저녁 6시 57분 서울 종로구청 앞 사거리 차벽 앞에서 경찰이 쏜 살수차 직사포에 맞아 쓰러졌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후 에도 물대포를 계속 발사해 쓰러진 백남기씨를 옮기는 것도 당시 힘든 상황이었다. 이후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뇌수술을 받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1947년 전라남도 보성 출신인 백남기씨는 1968년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 운동을 하다 박정희 정부시기 2최 제적을 당해 천주교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생활했다.

1980년 서울의 봄 에 복교해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아 1980년 5월초까지 계속 민주화 운동을 벌였는데 5.17쿠데타로 비상계엄이 확대되면서 계엄군에 체포되었다.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퇴학되고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가석방 후 고향으로 귀향해 1986년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했고 한국의 밀 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밀 살리기운동본부 광주전남본부에서 활동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에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이번 백남기씨 사건은 일단 붙고 보자는 식으로 무분별한 공약 남발이 부른 인재 이다.


한편 지난해 12월 29일 농림축산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18대 대통령 선가 농업과련 공약에 쌀값 21만원을 약속하는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라고 밝혔다.



검찰은 백남기 농민 사망 원인 규명을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가족과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백남기씨의 부검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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